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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블로그에서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주요 과제와 기술들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한국 경제에서 감축이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진 '산업 부문'을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 분야는 난도가 높은 만큼, 역설적으로 전 세계 혁신가들의 창의적인 솔루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이 세계적인 산업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철강, 건설, 조선, 석유화학 같은 탄소 집약적 산업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무거운 숙제가 남아있다.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40%가 바로 이 산업 부문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철강은 산업 배출의 약 34%를 차지하는 최대 배출원이며, 석유화학과 시멘트가 각각 19%, 14%로 뒤를 잇는다. 이 세 산업이 한국 산업 탈탄소 전략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배출의 중심이 된 성장의 엔진
한국의 산업 배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탈탄소화 노력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파악하기 위한 필수 과제다. 철강, 건설, 조선, 석유화학 등 탄소 집약적 섹터에서의 혁신 주도 성장은 한국이 글로벌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산업들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상당한 환경적 비용을 수반했다. 2024년 기준, 한국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40%가 산업 부문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 분야별 비중: 철강은 산업 배출량의 약 34%를 차지하는 단일 최대 배출원이며, 석유화학(19%)과 시멘트(14%)가 그 뒤를 잇고 있다.
- 전략적 집중: 따라서 이 세 분야가 한국의 산업 탈탄소 전략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해당 분야들은 탄소 감축이 워낙 어려운 '하드 투 어베이트(Hard-to-abate)' 특성을 가지고 있어, 단기 감축 목표는 다소 조심스럽게 설정되었다. 2018년 정점 대비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는 11% 수준이지만, 이후 2035년 50%, 2050년 80% 감축을 목표로 가팔라질 전망이다.
이러한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MOTIE)는 올해 1억 7천만 달러(약 2,500억 원)를 투입하여 '탄소 중립 100대 핵심 기술'과 연계된 R&D 및 장비 도입을 지원하고 있다. 동시에 주요 기업들도 차세대 공정과 소재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어, 이미 검증된 솔루션을 보유한 글로벌 기후테크 기업들에게 큰 기회가 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주요 산업 섹터별 기회 요인과 글로벌 혁신가들이 활약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할을 살펴보고자 한다.
분야별 기술 현황: 철강과 시멘트
철강
철강 산업에서는 국내 최대 제조사인 POSCO와 현대제철이 여전히 석탄 기반 고로 공정에 의존하고 있다. 석탄은 에너지원이자 환원제로 동시에 사용되며, 이 과정에서 다량의 CO2가 배출된다. 이로 인해 철강은 대표적인 탈탄소 난이도 산업으로 꼽힌다. 배출 저감을 위해서는 고로에서 전기로(Electric Arc Furnace)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그린 수소를 환원가스로 활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기술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POSCO는 이러한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영국 기반의 Primetals와 협력해 수소환원제철 공법(HyREX) 기술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으며, 향후 10년 내 기술을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린 뒤 2050년까지 수소 기반 철강 생산 체제로 완전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단기 및 중기적으로는 다양한 저감 방안이 병행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 고도화된 전기로 시스템, 철강 부산물 재활용 등 저탄소 제조 기술이 핵심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시멘트
시멘트 산업은 더욱 구조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핵심 공정인 석회석 소성(calcination) 단계에서 CO2가 부산물로 발생하며, 시멘트 1톤을 생산할 때 약 0.8톤의 CO2가 배출된다.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더불어, 클링커 함량을 줄이고 신규 골재 및 혼화재를 통해 광물 함량을 높이는 공정 혁신이 중요해지고 있다. 플라이애시, 고로 슬래그, 석회석 미분말 등의 활용 확대가 대표적인 방안이다.
국내 기업들도 저탄소 시멘트 및 콘크리트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캐나다 저탄소 스타트업 CarbonCure에 750만 달러를 투자했으며, 쌍용은 2030년까지 시멘트 공정의 탈탄소화를 위해 5억5천만 달러를 투자하고,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슬래그를 혼화재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삼표시멘트는 100만 톤 이상의 대체 원료를 사용해 탄소 집약적인 클링커 생산 비중을 낮추고 있다.
분야별 기술 현황: 석유화학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공정의 재설계
석유화학 및 정제 산업의 탈탄소화 노력은 단순한 에너지 전환을 넘어 공정 자체와 연료의 근본적인 변화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현재 주요하게 다뤄지는 분야는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를 활용한 원료 전환, 기존의 그레이 수소를 그린 수소로 대체하는 작업, 그리고 바이오 나프타와 같은 바이오 기반 원료의 도입 등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자원 순환은 국가적 최우선 과제가 되었으며, 그 결과 물리적·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은 한국이 2030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핵심 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맞춰 주요 대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 CJ제일제당: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PHA) 생산 규모를 대폭 확대
- 롯데케미칼: 여수의 7만 톤급 공장을 바이오 PET 생산 시설로 전환
- SK: 2027년까지 재활용 역량을 250만 톤으로 늘리기 위해 36억 달러를 투자
- LG화학: 미국 재생 화학 기업 게보(Gevo)와 파트너십을 맺고 바이오 프로필렌 개발. 또한 최근 생분해성 플라스틱, 바이오 기반 특수 소재, 가전용 코팅제 및 필름 등에 투자하기 위해 13억 달러의 자금 확보.

인천 소재 공장 전경, 대한민국
플라스틱을 넘어 배터리 재활용 또한 또 다른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10대 배터리 제조업체 중 3곳이 한국 기업인 만큼, 원재료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물론 소재 추출 및 재활용의 경제성 확보와 배터리 화학 조성의 다양성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러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 KBR과 협력하여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이 포함된 배터리 재활용 분말인 '블랙 매스(black mass)' 재활용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와 동시에 포스코와 성일하이텍은 블랙 매스에서 유가금속을 추출하는 습식 공정을 개발해냈다.
앞으로의 미래는 화학적 재활용(열분해, 메탄올 전환, 해중합), 생분해성 플라스틱, 전자제품 및 배터리 재활용, 소재 추출, 그리고 고부가가치 폐기물 자원화 기술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병행하여 에너지 효율 혁신을 통해 경제성을 확보하고, 늘어나는 에너지 소비가 환경적 이득을 상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분야별 기술 현황: CCUS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은 한국 산업계의 탈탄소화 여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정부는 2050년까지 전체 탄소 감축량의 약 8~12%를 CCUS가 분담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다만 현재 한국의 관련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국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대규모 혁신과 R&D, 그리고 과감한 자본 투자가 필수적이다.
탄소 포집 (Capture)
한국은 2030년까지 연간 100만 톤, 2050년까지 400만 톤의 CO2를 처리할 수 있는 포집 시스템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 포집 비용은 톤당 약 50달러(압축, 액화, 정제 비용 포함) 수준으로 관리될 예정이다.
-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산업 전반에 적용하기 위해 건식, 습식, 분리막 등 대규모의 경제적인 포집 기술 확보가 관건이다.
- 한국의 'CCU 기술 혁신 로드맵'에 따르면, 2030년까지 포집 비용을 30% 절감하고 40만 톤급 시설을 가동할 계획이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후 기술 실증 프로젝트를 위해 올해 1억 400만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탄소 활용 (Utilization)
포집한 탄소를 부가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바꾸는 기술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 코오롱인더스트리: 캐나다 '카본노바(Carbonova)'에 투자하여 포집된 CO2를 배터리, 건설 자재, 플라스틱용 탄소 나노 소재로 전환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 LG화학 & 포스코: LG의 건식 메탄 리포밍(DRM) 기술을 활용해 철강 공정의 CO2를 일산화탄소와 수소로 전환, 다시 원료로 재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 에스퓨얼셀 & 롯데건설: 연료전지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CO2를 롯데의 스마트팜으로 보내 작물 성장을 촉진하는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탄소 저장 (Storage)
한국은 2050년까지 1억 2,000만 톤 이상의 탄소 저장 용량을 확보한다는 국가적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국내 지층 구조상 충분한 저장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 호주 등 해외 저장 허브를 활용하고 기술 및 물류 부문에서 국제적으로 협력하는 전략이 한국 탈탄소 로드맵의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첨단 기술 협력을 통한 돌파구
한국의 산업 공정을 탈탄소화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대한 과제이지만, 이는 한국 혼자만의 힘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도전이다.
한국은 자국의 산업적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환경 개선을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포기할 생각도 없다. 바로 이 지점이 글로벌 혁신가들에게 거대한 기회가 된다. 한국 산업 전반에 걸쳐 빠르고 효과적이며, 무엇보다 경제적인 탈탄소화를 실현해 줄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한국은 지금 가장 매력적인 무대다.